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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지식비타민

인생을 굽는 사나이, 김영모과자점 김영모 대표
평점 9 / 누적 188   |   조회수 481  |   작성일 2018-10-12


2000년대 이후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같은 대기업의 프렌차이즈 빵집이 들어서며 소위 ‘동네 빵집’으로 불리던 개인 빵집들이 하나 둘 사라져갔다. 탄탄한 자본과 브랜드 가치를 지닌 대형 기업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도곡동, 프렌차이즈 빵집도 못 버티고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곳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빵집이 있다. 바로 ‘김영모과자점’이다.


김영모과자점의 시작

김영모과자점은 1982년 서초동에서 처음 빵을 팔기 시작했다. 김영모과자점의 대표는 이름 그대로 김영모 대표. 그가 가게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것에는 그만한 자신감과 또 그에 상응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었다. 김 대표는 1953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에게 버려진 그는 고모와 작은어머니 손에 키워졌다.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야 친모를 만날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를 받아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김 대표는 이 시절 ‘성공’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고 말한다. 이후 이모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빵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가 일했던 곳은 맛나당, 그곳은 어머니 집 건너편에 위치해 있는 빵집이었다. 먼 발치에서도 어머니를 보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이었다.


‘성실’로 다가가다

1982년 서초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 가게 근처에는 큰 제과점이 이미 위치해 있었다. 김 대표는 빵의 신선함을 위해 하루 4번씩 빵을 내놓겠다고 다짐하며 몸이 부셔져라 빵을 구웠다. 잠도 2~3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밤 12시에 직접 빵을 배달하기도 하는 등 최선을 다한 결과 손님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철저한 원칙

지금은 다양한 곳에서 시도하고 있는 ‘천연 발효법’의 시작은 김영모과자점에서 였다. 그는 철저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최상의 재료를 사용해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보통은 빵을 발효시킬 때 이스트균을 넣어 인위적으로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프랑스에서 견학을 하던 중 천연 효모로 빵을 만드는 것을 보게 된다. 그곳에서 기술을 배워와 시작된 것이 ‘천연 발효법’이다. 그는 천연 발효법에 대해 “빵에게 다시 제 모습을 찾아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식품의 안정성도 매우 중요시한다. 과거 그가 만든 슈크림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던 고객에게 원인을 밝히기도 전에 먼저 사과부터 했다. 그의 진심이 전해진 덕분에 그 손님은 현재까지도 김영모과자점의 단골손님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직원들이 케이크 400개를 지하실에 보관했는데 그는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케이크 400개 전부를 폐기해버렸다. 지하실 냄새가 밸 수 있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잘못 구운 빵이 그대로 매장에 있는 것을 보고 그날 하루는 장사를 안하겠다고 문을 닫은 적도 있다.

빵에 대한 집념, 철저한 원칙, 그리고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김영모과자점이 있을 수 있었다. 그는 성공을 하고 자신을 버렸던 친부모님에게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용돈도 드리고 안부를 전한다고 한다. 현재 김영모과자점은 7개의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 중이며 매년 약 150억 원의 매출을 내고 있다.


김지현 기자

#김영모과자점 #김영모

경영원칙#식품#도전정신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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