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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에서 대표이사로. 애경그룹 키워낸 장영신 회장의 일대기
평점 9 / 누적 230   |   조회수 1,028  |   작성일 2020-05-25


애경그룹의 장영신 회장은 국내 최초 여성 CEO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기업인이다. 장 회장은 연 매출 50억 원 수준에 머물렀던 비누제조사 애경의 경영 전반을 맡은 뒤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전설적인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그의 일대기 역시 주목받고 있다.


유학 후 결혼, 전업주부로 살다가

장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영특했다. 국비장학생으로 선정되어 미국 체스넛힐 대학 화학과에 입학해 4년 간 학업에 열중한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애경의 창업주인 채몽인 사장과 결혼한 뒤 전업주부의 길을 걷게 된다. 결혼 당시 그의 나이는 23살에 불과했다. 결혼 생활 11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남편이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장 회장은 남편의 죽음 후 1년 간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한 채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이 남긴 회사를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장 회장은 1972년 애경의 사장에 취임한다.


국내 최초 여성 CEO의 험난한 경영기 

그의 사장 취임기는 험난했다. 여자 밑에서 일할 수 없다며 직원들은 사직서를 냈고 임원진들은 그를 무시하고 외면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한 그는 1973년 석유파동 당시 특유의 순발력과 도전정신을 발휘하며 수출을 이끌어냈고 회사를 위기 속에서 구출해냈다. 화학과 출신인 그는 애경의 사업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유학을 했기 때문에 영어에도 능통했다. 이 같은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해외 기업들과의 협업 계약도 곧잘 따낼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984년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와의 합작이다. 당시 계약서의 세부내용을 보면 장 회장의 협상능력이 돋보인다. 장 회장은 애경이 주도권을 쥐고 로열티는 주지 않는다는 다소 까다로운 세부 항목을 내세웠고 그의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결단력을 높게 산 유니레버 측은 계약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연 매출 49억원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애경그룹이 되기까지

장 회장은 유니레버와의 합작을 통해 애경의 제2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장품 산업으로 영역을 확대한 애경산업은 계속해서 사업다각화에서 성과를 이뤄냈다. 1990년대 초에는 백화점을 열며 유통 분야에까지 진출했다. 국내외 협력사의 도움과 발빠른 대응으로 IMF 위기도 빗겨나갔다. 2000년대 초 애경그룹은 1조 원 매출을 돌파하면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견그룹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유통에 이어 항공, 호텔, 부동산 등 다방면에 진출하며 국내외 46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거느리게 된 애경그룹은 현재 연 매출 6조 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지식비타민 장은진 기자

(이미지=애경)

CEO성공스토리#매출처다각화#위기극복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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